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모든 학문의 아버지죠. 심지어 음악까지 섭렵한 넘사벽이에요. 2400년 전 학자의 사상이 21세기에도 유효할까? 모든 현상을 다각적으로 본 아리스토텔레스, 전문가는 각자의 전문적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죠.
각자의 좁은 관점을 벗어나 주변을 다각적으로 보도록 안내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세상의 입체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게 되고 인간에 대한 통찰에 주목해보는 시간입니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유일한 철학자라고 했죠. 영국 철학자 솔즈베리요한은 그는 새벽녘의 별 같았고, 세상을 환히 비추어 주었다고 했죠. 20세기 현대 철학자들이 꼽은 서구 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중앙 계단에 누워있는 사람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죠.



기하학에 빠져있는 모습을 묘사한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는 어디 있을까요?
그리스의 핵심적인 두학자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육신의 의사가 있다면 플라톤은 영혼의 의사다라고 했죠. 플라톤은 BC427~347년까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죠. 이데아론을 정립하며 철학자에 의한 철인정치를 주장했죠.


두 사람의 나이차가 많이 나요. 플라톤이 60세고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에 아카데미아에 입학을 합니다. 무려 43살이 차이가 납니다. 사진 속에선 플라톤이 75세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2세입니다.
플라톤이 손에 든 책은 티마이오스로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에 따라 인간의 창조를 정리한 책이라고 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지고 있는 책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 지상의 인간들이 행복해지려면 어떤 윤리적 방법이 있는지를 기술한 책이라고해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는?


아카데메이아는 기원전 387년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플라톤이 세운 학교라고 해요. 책을 읽으면서 철학을 한 게 아니라 플라톤은 철학은 대화로 이뤄지는 것, 글로 하는 게 아니라고 했죠. 질문과 대답, 대화를 통해 살아있는 철학이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카데메이아 최고의 지성이자 책벌레인 아리스토텔레스, 그 이유는 스승인 플라톤이 썼던 글들이 지금과 똑같은지 봐야겠다며 강의를 들으며 다르다고 지적하고 그랬다고 하네요. 그래서 물과 기름 같았다고 해요.
그리스에서 서양 학문이 꽃피운 이유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했기 때문이죠. 다른 의견에 닫혀있었다면 그리스의 학문은 없었을 거예요. 의사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고 자란 건 인간의 상처 난 몸, 피와 뼈인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원형이 하늘 위에 있다고 하자 대혼란이 왔죠. 스승과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 아리스토텔레스.
왜 플라톤은 세상의 진리가 하늘에 있다고 했을까요?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왜 죽었죠? 민주주의 투표인 독약형으로 죄목이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현혹했다고 해서죠. 그리스의 상징인 민주주의가 초래한 스승의 억울한 죽음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완벽한 이성이 서지 않는 한 악은 사라지지 않을 것.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건 뭘까요?
감정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의 총집합인 연극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예술에 빠지면 정신이 없어진다고 분노를 하면 판단이 잘 안서잖아요. 감정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예술이 감정을 동요시킨다면 예술을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했다고해요.
차분히 이성적인 생각에 도움되는 음악을 허용하고 분노, 눈물, 자극되는 감성적인 음악은 버려야 한다고 함. 이성적 사고에 도움을 주는 예술만 필요하다고

소크라테스의 사망 뒤 방황했던 플라톤은 아테네 서쪽으로 12년간 시라큐스., 크로톤으로 여행을 합니다. 주로 아테네의 서쪽 지역으로 이탈리아 여행 중 만나게 된 피타고라스학파인 거예요.

영혼을 정화하는 방법이 차분한 음악과 수학이라 생각했고, 완벽한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진정한 진리는 이데아 세계에 있다고 깨닫고 플라톤 학교인 아카데메이아 기둥에 적어둔 말이죠.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철학을 탐구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행로가 확연히 다르죠. 플라톤이 죽은 뒤에 아테네를 떠나 동쪽으로 여행을 하게 되죠. 팔라 톤의 학교인 아카데메이아의 새로운 교장으로 온 사람이 고향 같은 마케도니아와 아테네는 갈등 중이었고 연이은 전쟁으로 아테네는 쇠락하게 됐죠.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가 부상하며 그리스를 정복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시점 마케도니아와 친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의심하게 되죠.
<출처: jtbc 차이 나는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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